“진짜 여행은 떠나기 전에 이미 시작된다.”
우리가 여행을 시작한 건 비행기에 탑승한 순간이 아니라, 사실 그 몇 주 전부터였다. 짐을 정리하고, 집을 비우고, 잘라니 이유식을 준비하고, 이사 청소를 하고, 공항으로 가기까지.여행이 아니라 육아와 이사와 현실이엉켜 있는 하루하루였다.
D-2 이사 전날
여행 시작 전에 며칠 간은 호주에서 살림살이를 정리하느라, 정말 바쁘고 힘들었다. 평상시 10분이면 끝낼 일을 아기를 돌보면서 하니 1시간은 그냥 걸렸다. 거기다 여행시작 전 이유식시작, 6개월 예방접종으로 모든 게 처음인 초보 엄마는 정신이 없었고 이것저것 생각하고 계획할 일이 많았다. 호주는 한국처럼 포장 이사가 없기 때문에 (물론 엄청난 비싼 가격으로 존재하겠지만) 스스로 접시 하나까지 뽁뽁이로 포장해 가며 이사준비를 해야 되는데, 이삿짐을 싸는 시간은 생각보다 상당히 많이 걸린다.
우리는 여행 시작 약 2개월 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본격적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매일 잘 사용하던 육아템을 하나하나를 정리할 때마다 육아의 강도가 높아졌고, 쓰던 가구들이 하나씩 사라져 갈 때마다 불편해졌다. 가구들은 언제 팔릴지 모르니, 일찍 중고마켓에 광고를 올렸는데, 생각보다 가구들이 빨리 팔려서 여행 시작 전 3주 전부터는 소파도, 식탁도 없이 텅 빈 집에서 캠핑 용품으로 살았다. 심지어 자동차도 한 달 전에 팔아서, 마지막 달은 차를 렌트해야 했다.
출발하기 이틀전. 남은 가구들을 storage unit에 보냈다. 덩치 큰 가구들을 거의 다 팔았는데도 여전히 짐이 많았다. 이사를 할 때마다 남편이랑 생각한다. 이놈의 이사 지긋지긋하다고. 우리가 거주용 아파트가 있었다면, 가구 그대로 있는 상태인 furnished flat으로 렌트를 주고 여행을 나갔을 텐데.. 하지만, 한 곳에 정착하는 것보다 언제나 기회가 되면 어디론가 떠나겠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거주용 부동산은 적합하지 않다. 그러니 쓸 때 없는 생각말자고 다시 함께 마음을 다 잡는다. 어쨌든 남은 가구들과 짐들을 다 보내고 마지막 날, 우리는 텅 빈 집에서, 캠핑 매트리스에서, 잘란이는 여행용 아기 침대에서 잠을 잤다.
D-1 여행 시작 전날
전날 모든 물건들을 storage unit에 보내고, 청소 회사에서 아침 일찍 7시에 무빙아웃 청소를 시작했다. 세 시간 남짓의 청소를 끝낸, 그리고 이제는 깨끗하게 청소된 새집 같은 빈집을 보니, 우리가 정말 시드니를 떠나 여행을 시작하는구나 하는 하고 실감이 났다. 18개월 간의 여행이라! 설레는 마음과 동시에, 우리 아가의 첫 번째 보금자리와 이렇게 이별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순간 싱숭생숭해졌다.
출국 전날 부동산에 집 열쇠를 반납해야 했기 때문에 시드니에서의 마지막날은 시드니 공항에 위치한 숙소에서 보내기로 했다.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날 역시 정신이 없을 만큼 바빴다. 아침에 청소업체로부터의 moving out 집 청소, 마지막까지 쓴 캠핑 용품이랑 아기 카시트를 보관하기 위해 storage unit warehouse에 가져했다. 거기다 부동산에 집 열쇠도 돌려주어야 했고 (부동산은 또 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지), 렌터카도 반납해야 했다. 이 모든 장소들이 한 곳에 있지 않고 각각 다른 장소에 멀리 떨어져 있어, 각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모든 것을 아기와 함께 하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에, moving out 청소가 끝난 후, 최종 집상태를 체크하고, 집 근처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은 후, 남편이 모든 걸 맡아하기로 하고, 나는 잘란이를 데리고 공항으로 가서, 공항 호텔에 얼리 체크인 하기로 했다. 어차피 렌터카 크기가 작아서 아기와 나, 우리 여행짐, 마지막까지 쓴 캠핑용품들이 전부 차 안에 들어갈 수 조차 없었다.
늘 생각 없이 기분 좋게 가던 공항도 아기와 함께 가려니, 번거로운 점이 많았다. 우버랑 택시는 카시트도 없이 탈 수 없다. 결국 혼자서 유모차를 끌고 아기랑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아기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여행하는 건 두 번째, 하지만 아기와 나 단둘이서, 대중교통을 사용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드니 트레인은 플랫폼이랑 기차랑 간격이 넓고, 기차랑 플랫폼이랑 수평이 아니라서 긴장했는데, 막상 닥치니 슈퍼 파워가 나오면서 혼자서 척척해낼 수 있었다. 잘란이도 엄마가 초긴장상태인지 알고 도와줬다. 트레인을 타는 순간, 잠들어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깼다. 잘란이가 열심히 자준 덕분에, 편안하게 센트럴에서 기차도 갈아타고, 공항으로, 그리고 공항호텔로 향했다.
시드니 공항에 위치한 Rydges Sydney Airport 은 위치하나는 정말 편리한 호텔이다. 공항건물에서 나와서 횡단보도로 길만 건너면 거의 바로 앞에 호텔이 있다. 1박에 245불, 가격에 비해 방크기는 작긴 했지만, 그래도 공항 뷰가 멋지다. 4성급 호텔이고, 짐을 방까지 가져다주는 서비스가 없어서, 아기 때문에 평상시보다 짐을 많이 가지고 여행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좀 불편했다. 그래도 호텔은 깨끗했고,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서 서두르지 않고 바로 공항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점이 정말 편리했다. 아기와 여행하지 않았다면 사용할 일 없는 호텔이지만, 오전 비행기 + 장시간 비행을 앞둔 아기와 여행 함께 여행하기에는, 좋은 선택이었다. 평상시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서, 수유하고 준비하고 바로 나가서 체크인만 하면, 시간이 딱 맞아떨어지는 스케줄이니 말이다.
여행하기 10일 전, 인생 174일 차에 이유식을 시작한 잘란이. 아침에는 정신이 없어서 이유식을 먹이지 못했다. 호텔에 도착해서 이유식을 먹여야 하는데, 어디에 앉혀야 할지 모르겠다. 여행을 위해 릿첼 소프트 의자를 사긴 했는데, 짐을 뒤져서 꺼내서, 의자를 만드려니 귀찮다. 생각해 보니 유모차에서 먹이면 되겠다. 호텔에서 이유식마스터기로 열심히 일 인분 이유식을 만들었다. 어차피 초기 이유식이라 아주 간단했다. 채소하나 넣고 데치고, 쌀가루랑 같이 넣어서 갈면 끝. 원래는 소고기도 넣지만, 소고기를 안전하게 호텔도 가져올 방법이 없었으므로, 소고기는 하루 건너뛰기로 했다. 사실 온몸이 피곤해서 쓰러질 지경이었지만, 비행하는 날 이유식을 하루 건너뛰기로 했기에 열심히 만들어 먹였다 (초기에는 하루 이틀정도 이유식을 건너뛰어도 상관없다고 한다). 이것이 엄마의 파워인가 보다.
이유식을 먹이고, 피곤에 절어 잠이 살짝 들었을 무렵, 렌터카를 반납하고 모든 일정을 마친 남편이 5시쯤 피곤한 얼굴로 호텔로 돌아왔다. 우리는 공항에 가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이사한다고 특히나 정신없이 바빴던 3일간의 피로함이 물밀듯이 밀려와서, 남편과 나 모두 이른 저녁잠이 들었다. 잘란이도 피곤했던지 쌔근쌔근 잘도 잤다.
이 글은 잘라니 가족의 세계여행 시리즈 중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현실적인 기록’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 이후 여정은 [프롤로그 2 - 6개월 아기와 함께 세계여행 시작합니다] (https://travellingfamily.tistory.com/3) 글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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